제목 : 학꽁치 비상하다 등록일 : 2011-01-15    조회: 759
작성자 : 김창수 첨부파일:
연초에 눈이 많이 내리면 풍년이 온다고 했다. 2011. 신묘년 새해에

포항지역에는 근래에 보기 드물 정도로 폭설이 내렸다고 한다. 포항

과 맞닿은 경주도 연초 직후로 눈이 많이 쌓여 경주에서 감포로 가

는 길 주변 산하는 한 폭의 산수화처럼 하얀 눈이 뒤덮여 있다.



주말 아침에 경주에서 감포로 가는 시내버스는 썰렁한 날씨처럼 서

너 명을 태우고 보문호를 지나 덕동호를 굽이굽이 바라보며 고불고불

이어진 산길을 따라 아직도 음지계곡으로 난 도롯가에 얼어버린 잔설

을 피해 조심조심 달렸다.

연륜이 쌓인듯한 운전기사 옆 차창 너머로 햇살에 쨍그랑거리며 하얀

눈이 눈부시게 아침을 깨운다. 도롯가 산하는 설원 평야다. 아무도 밟

지 않은 논밭에는 잡티 하나 없는 하얀 눈이 흐트러짐 없이 퍼져 있고

고랑 사이로 쌓인 눈은 아침 햇살에 은빛 물결로 반짝거린다.



백년찻집을 지나 추령 고개 터널을 뚫고 나오면 전촌 바닷가까지 폭설

에 뒤덮인 산하에는 하얀 입자가 바람과 해풍, 햇살에 눈 부시도록 아

름답고 곱다. 운전기사의 얘기로는 감포 방향으로 현재 울산에서 포항

간 고속도로를 건설중이며 경주에서 감포 간 불국사 방면으로 4차선

도로가 공사 중이라고 했다. 새로운 길이 개통되면 덕동호를 따라 구

불구불 이어진 숨막히는 왕복 2차선 도로는 정감 넘치고 운치있는 탐

미 코스로 절세 도로가 될듯싶다.



감포 읍내 포구에는 낚시가게가 한군데 밖에 보이지 않는다. 칠십 대

후반의 할아버지가 꾸리는 조그만 낚시가게에는 텁텁하고 쭈글쭈글한

사람들이 들락거린다. 낚시용품을 파는 주인이라기 보다 시골의 옆집

할아버지처럼 포근하고 친근하게 다가온다. 작년 겨울에 들리고 새해

에는 처음으로 낚시가게에 들러 할아버지를 뵌다. 새해 건강을 기원

하니 주름살이 활짝 핀다. 새우미끼를 주문하자 작은 새우를 주기

에 좀 큰 것을 요구하니 잔파도처럼 은은한 미소로 요즘 학꽁치가

많이 난다면서 학꽁치 미끼는 작은 새우가 좋다고 했다. 예전에 송

대말 등대 앞바다에서 연방 학꽁치를 올리는 강태공에 비해 학꽁치

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한 터여서 노인이 말을 귀담아 들을 수밖에 없

었다. 학꽁치를 잡는 데는 낚시채비도 다르고 낚싯바늘도 다르다고

일러줬다. 은빛 무늬에 춤추는 학꽁치를 부러운 눈으로 본지 엊그제

같아서 오늘은 낚시가게 주인이 알려준 대로 학꽁치를 잡아보기로 했

다.



바다를 모르는 자는 바다 기상상황을 듣고 바다로 나가야 안전하다.

자동 해상 일기예보(지역국+131,2번)에 의하면 연초부터 하얀 눈이

수북이 쌓이고 토끼 발톱처럼 거칠고 날 선 바다도 오늘은 비교적 잔

잔하다고 예고했다. 다만 너울에 유의해야 한다는 사족 아닌 사족을

달았지만, 그 사족을 무시해서는 안된다. 먼바다에서 크게 일어오는

파도는 리듬을 타고 춤추듯 때로는 산더미처럼 육지로 밀려오지만

시야에서 보이고 갯바위로 다가올수록 파도의 힘은 약해진다. 그러나

너울은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방향을 잴 수 없다. 이리저리 날뛴다. 먼

바다의 파도 속에 숨을 죽이고 잠수하여 마치 공비처럼 느닷없이 육

지 끄트머리 갯바위로 예고도 없이 광란의 물벼락을 날리고 사라진

다. 먼바다는 태평스런 바다가 펼쳐지고 화창하고 평온한 바다에

도 너울은 낮에도 밤 고양이처럼 큰 파도 없이 살금살금 다가와 갑자

기 해안가 갯바위 앞에서 소용돌이치며 엄청나게 응축된 에너지를

발산하고 사라진다. 너울은 예측할 수 없지만, 자동해상일기예보를

듣고 바닷가에서 조금 떨어져 너울이 어떻게 소용돌이치고 흘러가는

지 어느 정도 관망 후 안전한 갯바위로 접근해야 한다. 갯바위는 바

닷가에 돌출된 산봉우리다. 비록 큰 바위는 아닐지라도 그 위험성은

산 위에 드러난 큰 바위처럼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



바닷물 때가 묻은 갯바위는 조심하지 않으면 미끄러지기 쉽고 잔 파

도에 튀기는 물을 피한다고 성급히 발을 떼다간 넘어져 타박상을 입

거나 허리를 다칠 수 있다. 예기치 못한 잔파도에 튀어 오른 물은

차라리 물세례를 받고 갯바위를 부여잡고 파도가 밀려 가면 그다음

안전하게 비켜가는 게 상책이다. 기기 묘한 갯바위 무리는 대둔산의

산봉우리나 마이산의 산봉우리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오랜 세월

해안침식에 깎인 갯바위는 형형색색의 조각품을 만들어낸다.



감포 송대말등대 앞바다는 멀리서 파도를 타고 온 무수한 망상어,

학꽁치 무리와 수많은 치어가 남자의 정자처럼 꼬리에 꼬리를 물고

바다를 휘저으며 바다를 질주한다. 인간이나 물고기나 생명의 신비

하고 아름다움은 매양 마찬가지인 것 같다. 수많은 물고기 호흡이

뭉치고 쪼개지는 바닷속은 하얀 거품이 뽀송뽀송 피어오르며 파란

띠를 두른 조각품을 만든다.

새우미끼가 쏟아진 갯바위 앞바다에 무수한 물고기가 유영하는 바

다는 장관이다. 속살이 드러나는 바다는 깨끗하고 투명하다 못 해

눈부신 천연 어항이다. 갯바위와 부딪치는 파도에 플랑크톤이 흐르

고 치어와 조금 자란 새끼, 어미, 씨알 좋은 물고기가 공생하는 겨

울 바다에 단체로 온듯한 늙은 강태공이 연방 학꽁치를 낚아올린다.

가끔은 낚싯바늘 번지를 잘못 찾은 망상어와 욕심이 앞선 늙은 놀래

기나 씨알좋은 망상어도 덤으로 올라온다. 수십 마리의 갈매기가

건너편 갯바위에 앉아 입다심을 하며 강태공에게 시선을 쏘아붙인

다. 강태공이 떠나면 갯바위에는 쓰다 남은 새우미끼와 갯바위 앞

바다에 미련이 남은 학꽁치 일부는 갈매기의 밥이 된다.



학꽁치는 입이 새의 부리처럼 뾰족하고 길다. 등은 푸르스름하고

은빛 물결이며 잡티 없이 깨끗하고 투명하다. 다른 물고기처럼 옆으

로 펑퍼짐하지도 않고 길쭉하고 날씬하다. 마치 준수하고 키 큰 귀공

자 물고기 타입이다. 그들 밖의 세상에 올라온 학꽁치는 그 어느 물고

기보다 격렬하게 저항하며 몸부림친다. 낚싯바늘에 입이 걸린 채 쉬

지 않고 몸을 비튼다. 둥근 원을 그리듯 요리조리 자유자재로 몸을

뒤트는 유연성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학꽁치의 춤 추는 비상은 흡

사 무도장의 속칭 제비처럼 날렵하고 하늘로 올라갈 듯 가볍다. 만일

바닷속에서도 저리 날렵하게 춤춘다면 숫학꽁치는 무수한 염문을 퍼

뜨리고 암학꽁치와 싸움이 그칠 날이 없으리란 상상마저 감돈다.



스펙트럼처럼 은은하면서도 엷은 겨울 햇살에 은빛 물결로 일렁거리

는 바다에서 시선을 돌리자 낚시통에 들어간 씨알 좋은 감성어 한 마

리가 촘촘한 그물로 엮어진 낚시통 지퍼의 반쯤 열린 공간 사이로 튀

어나와 몸통의 절반은 허공에 두고 숨은 거둔 듯하다. 빠삐용처럼 용

감하게 틈새 사이를 찾아 탈출을 감행했지만 실패한 모양이다. 힘이

넘치는 씨알 좋은 감성어는 낚시통의 허접한 빈틈을 찾아 마지막 에너

지를 발산하며 점프했으나 복부의 비만인지 몸통이 탈출구 양사이드

걸린 셈이다. 조금만 더 힘을 냈거나 지퍼가 더 열려 있었으면 탈출했

을 듯하다. 낚시통이 바다 바로 위 갯바위에 있었으니 몸통이 빠졌으

면 바로 바다로 잠수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제법 큰 씨알이지만 비슷

한 사촌도 있으니 한 마리 탈출한다고 그리 아쉬울 게 없었다. 낚시통

의 주인이나, 연어가 알을 낳고 기진맥진해 죽는 것처럼 있는 힘을 다

해 점프하다 탈출에 실패하여 힘이 소진되어 바로 죽은 씨알 굵은 감성

어나 아쉬움은 매양 한가지인지 모르겠다.



씨알 좋은 물고기는 손맛도 좋다. 손바닥보다 조금 더 큰 감성어가 낚

싯바늘에 처음 걸렸을 때 경우 잔고기처럼 바로 감지하지 못하는 경우

가 있다. 입에 겨우 걸리면 기분 나쁠 정도로 감성어는 불편하고 자존

심 상한다. 잠깐 조용하다. 뭔가 잘못된 듯하다. 릴낚시로 줄을 조금씩

감으면 줄이 탱탱해지고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질질 끌려간다.

아플 정도로 강태공이 인정사정없이 잡아당긴다. 그제야 씨알 굵은

감성어는 후회막급이다. 잔 새우 미끼에 현혹되어 앞뒤 안 가리고 덜

컥 물다 빼도 밖도 못한다. 후회하는 순간 씨알 좋은 감성어는 살려고

발버둥을 친다. 바닷속 늪으로, 갯바위로 입에 바늘을 물고 줄을 당

긴다. 갯바위로 줄을 끌고 가면 행여 줄이 끊겨 살아날 수 있다. 하

지만 감성어의 잔머리를 알아챈 강태공은 서서히 릴을 감되 바닷속

갯바위로 달아나지 않도록 줄을 풀었다 놨다 에너지를 소진한다.

또한, 감성어가 낚싯바늘을 물고 달아날수록 바늘은 제 살에 더 깊이

파고들고 일시에 힘을 쏟아부은 물고기가 기진맥진할 때 재빨리 낚

싯줄을 감으면 씨알 좋은 놈은 두 눈을 부릅뜨고 갯바위로 올라온다.

금방 올라온 물고기는 검은 눈과 지느러미에서 싱싱함이 살아 있다.



낚싯줄 반대방향이나 지그재그로 달아나려는 감성어와 릴을 감으면

서 손바닥에 전해오는 탱탱한 손맛이 절정에 이른다. 낚시의 달인

중 혹자는 손맛이 클라이맥스 섹스 맛보다 더 좋다며 낚시예찬론자

가 된다. 물론 세월을 낚거나 오욕칠정을 풀어버리는 맛도 포함돼

어 있음은 여지가 없다.



바다는 그 어떤 피조물보다 변화무쌍하다. 아침에 잔잔하던 바다는

바람이 일고 서서히 파도가 인다. 파도는 갯바위를 집어삼킨다.

일기가 좋지 못하여 일몰의 장엄한 풍경 담기는 후일 미루고 서

둘러 감포를 떠났다. 황금빛 석양이 따스하게 비치는 차창 너머로

활개치는 치어와 학꽁치의 고고한 춤사위가 아른거린다.

20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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